공연 자막을 처음 맡았을 때
자막은 대개 갑자기 맡게 됩니다. 번역 자막이 필요한 해외 초청작, 청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한글 자막 회차, 가사가 잘 안 들리는 뮤지컬 넘버. 누군가는 해야 하고, 보통 조연출이나 막내 스태프에게 옵니다.
이 글은 어떤 프로그램을 쓰든 통하는 준비 순서를 먼저 정리하고, 끝에 StageText로는 어떻게 하는지 짧게 덧붙입니다.
자막 담당이 하는 일
일은 둘로 나뉩니다.
- 제작: 대본을 관객이 읽을 수 있는 단위로 나누고, 화면에 어떻게 보일지 정합니다.
- 오퍼레이션: 공연 중에 배우의 말에 맞춰 자막을 한 장씩 넘깁니다.
한 사람이 둘 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작을 잘 해두면 오퍼레이션이 쉬워지고, 제작이 엉성하면 공연 내내 고생합니다.
준비 순서
1. 대본 버전부터 고정합니다
자막 작업에서 가장 흔한 사고는 “옛날 대본으로 만들었다”입니다. 연습 중에 대사는 계속 바뀝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연출부에 최신 대본이 어느 파일인지 확인하고, 이후 수정은 누가 어떤 경로로 알려줄지 정해 두세요. 자막 파일 이름에도 날짜를 넣어 두면 나중에 헷갈리지 않습니다.
2. 한 번에 띄울 분량을 정합니다
자막 한 장은 관객이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분량이어야 합니다. 기준은 공연마다 다르지만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것은 이렇습니다.
- 한 장에 두 줄 안쪽
- 한 호흡에 말하는 만큼을 한 장으로
- 웃음이나 반전이 있는 대사는 배우보다 먼저 보이지 않게 따로 나누기
긴 독백을 한 장에 다 넣으면 관객은 글을 읽느라 배우를 못 봅니다. 반대로 너무 잘게 나누면 넘기는 사람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3. 줄바꿈은 의미 단위로
줄이 바뀌는 자리가 단어 중간이거나 조사 앞이면 읽는 속도가 뚝 떨어집니다. “어디 가는 길인가, / 우리 보배?”처럼 말의 덩어리가 끝나는 곳에서 줄을 바꿉니다. 자동 줄바꿈에 맡기더라도 중요한 대사는 직접 확인하세요.
4. 누가 말하는지 보이게 합니다
한글 자막 회차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관객이 대상이라면 화자 표시가 꼭 필요합니다. 이름을 말머리로 붙이거나 인물마다 색을 다르게 합니다. 음향효과와 음악도 “(천둥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처럼 적어 줍니다. 어디까지 표기할지는 혼자 정하지 말고 연출, 그리고 가능하다면 접근성 매니저나 당사자 자문과 함께 정하세요.
5. 실제 객석에서 글자 크기를 봅니다
작업하는 노트북 화면에서 잘 보이는 크기와 객석 맨 뒷줄에서 보이는 크기는 전혀 다릅니다. 극장에 들어가는 첫날 프로젝터나 모니터에 띄워 놓고 맨 뒷줄과 양쪽 끝자리에 직접 앉아 보세요. 조명이 들어오면 또 달라지므로 조명 리허설 때 한 번 더 봅니다.
첫 공연 전 점검 5가지
- 대본 버전 — 지금 자막이 최종 대본과 같은가. 마지막 연습에서 바뀐 대사가 반영됐는가.
- 화자와 큐 순서 —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넘겨 보며 빠진 대사, 순서가 바뀐 대사, 화자가 잘못 붙은 대사가 없는가.
- 객석 가독성 — 맨 뒷줄과 측면 자리에서 읽히는가. 조명이 밝은 장면에서도 읽히는가.
- 외부 디스플레이 — 공연에 쓸 그 컴퓨터, 그 케이블, 그 프로젝터로 띄워 봤는가. 절전·화면 보호기·알림은 껐는가. 전원 어댑터는 연결했는가.
- 전체 리허설 — 런스루에서 실제 속도로 끝까지 넘겨 봤는가. 배우가 대사를 건너뛰거나 애드리브를 하면 어디로 어떻게 따라갈지 정했는가.
다섯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막은 혼자 연습할 수 없는 일이라, 런스루를 한 번이라도 더 같이 도는 것이 어떤 준비보다 낫습니다.
StageText로 한다면
StageText는 이 일만을 위한 macOS·Windows 앱입니다.
- 대본 PDF를 불러오면 화자를 인식해 큐 단위 자막 초안을 만듭니다. 초안이므로 위의 2~4번 기준으로 직접 검수합니다. → PDF 대본 불러오기
- 글꼴·크기·색·위치는 트랙 단위로 정합니다. 객석에서 보고 크기를 바꿔야 할 때 한 번만 고치면 됩니다.
- 인물별 서식과 말머리를 지정할 수 있고, 단어 단위로 자동 줄바꿈됩니다.
- 공연 중에는 쇼 모드에서 외부 디스플레이로 내보내고 큐를 넘깁니다. 블랙아웃을 지원합니다. → 10분만에 시작하기